책은 나의 벗/리뷰

[에세이]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ibam 2012. 2. 14. 02:26


 




제목 :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지은이 : 홍세화
출판사: 창비


이 책의 저자인 홍세화씨를 간단히 소개하자면 1972년 대학 재학 시 ‘민주수호선언문’사건으로 제적당했다가 ‘민주투위’. ‘남민전’ 조직에 가담했다. 1979년 다니던 무역회사의 해외지사 근무차 유럽으로 갔다가 남민전 사건이 터져 귀국하지 못하고 빠리에 정착한다. 그는 빠리에서 관광안내, 택시운전 등 여러 직업에 종사하면서 망명생활을 하다가 2002년에 귀국해 ‘한겨레’ 기획위원을 지냈고 현재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지성지 ‘르 몽드 디플로마티크’의 한국판 편집인을 맡고 있다. 내가 평소에 가려워하고 갑갑해 하던 것을 홍세화님은 이 책을 통해 시원하게 다 긁어주셨다.

볼테르의 “나는 당신의 견해에 반대한다. 그러나 나는 당신이 그 견해를 지킬 수 있도록 끝까지 싸우겠다.”라는 말을 공유하게 됩니다. 내가 반대하는 견해를 죽이려고 끝까지 싸우는 게 아니라 그 견해가 지켜질 수 있도록 끝까지 싸우겠다는 볼떼르의 선언은, 내가 반대하는 견해를 죽이려고 애쓰는 한국 사회, 국가보안법을 계속 가지고 있는 우리에게 ‘왜 그래야 하는가’ 라는 물음을 제기합니다. 볼떼르는 이렇게 답합니다. “우리들의 부싯돌은 부딪쳐야 빛이 난다”고. 즉, 서로 다른 견해가 자유롭게 표현되어 부딪칠 때 진리가 스스로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나와 다른 견해를, 다르다는 이유로 없애려고 하는 것은 내 견해의 옳음을 밝히기 위해서도 옳지 못한 행위가 된다는 것입니다.  (p.372)

이렇게 긴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는 것은 이 부분이 저자가 이야기 하는 ‘똘레랑스’의 핵심을 잘 설명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똘레랑스’‘다른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의 자유 및 다른 사람의 정치적·종교적 의견의 자유에 대한 존중’(p.349)을 뜻한다. 저자는 한국사회에는 ‘정(情)’이 흐르는 사회라면 프랑스 사회는 똘레랑스가 흐르는 사회라고 하며 프랑스 사회의 똘레랑스를 배우고 실천하자고 촉구한다. 저자의 말처럼 한국사회는 타인의 생각을 존중하기보다는 비방하고 깔아뭉개는데 익숙한 사회인 것 같다. 선거 때 후보들의 토론회를 보면 이 사실을 세살박이 어린애도 다 알 노릇이니 말이다.


또한 저자는 이 똘레랑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경험담을 하나 들려준다. 여기서는 베르트랑을 미워하는 자신의 모습을 돌이켜보며 한 가지 중요한 의미를 전해준다.


프랑스에선 이 주장과 저 주장이 싸우고 이 사상과 저 사상이 논쟁하는 데 비하여 한국에선 사람과 사람이 싸우고 또 서로 미워한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프랑스인들은 다른 사람의 의견, 주의 주장 또는 사상을 일단 그의 것으로 존중하여 받아들인 다음, 논쟁을 하여 설득하려고 노력하는 데 비하여 우리는 나의 잣대로 상대를 보고 그 잣대에 어긋나면 바로 미워하고 증오한다. (p.138)


이처럼 홍세화씨는 빠리 망명생활을 한 사회와 다른 사회의 만남으로 표현하며 그 곳에서의 경험을 통해 프랑스사회의 ‘똘레랑스’를 우리에게 소개하며 함께 배우고 실천하자고 한다. 뿐만 아니라 나아가 이런 똘레랑스의 정신으로 한반도의 통일도 앞당길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출간당시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그 후 우리들에게 많은 성찰의 기회를 주었다는데서 큰 의미와 업적이 있다. 일부에선 너무 친 프랑스적이고 사대주의적이다. 라는 견해가 있지만 이는 홍세화씨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저자는 프랑스 사회를 무조건적으로 예찬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부족한 점을 프랑스 사회의 ‘똘레랑스’ 라는 데서 그 해답을 찾고자 했고 또한 모두의 동참을 호소했던 것이다.




<갈무리>

베르트랑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한 데 반해 나는 그의 주장을 반박한 것이 아니라, 그런 주장을 하는 그를 미워한 점이다. (p.137)

"세화야, 네가 앞으로 그 말을 못 하게 되면 세 번째의 개똥은 네 차지라는 것을 잊지 마라." (p.286)

"존중하시오. 그리하여 존중하게 하시오." (p.349)

똘레랑스는 '관용(寬容)'이라기 보다 '용인(容忍)'이며 '화이부동(和而不同)'입니다. '화이부동'에서 '부동(不同)'은 '같지 않다'를 뜻하는 게 아니라 '동화하지 않는다'를 뜻합니다. 다시 말해, '서로 화평하면서 획일화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다양성과 '다름'을 존중하라는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p.373)



2010년 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