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벼룩, 루시카
제목 : 벼룩, 루시카
지은이 : 마리아순 란다
출판사 : 책씨
마리아순 란다. 이름만큼이나 특이한 소재를 이용해서 글을 짓는 작가이다. 전 작품으로 ‘침대 밑 악어’란 작품이 있는데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블로그를 통해 알게된 태극취호님의 서평을 본 바로, 침대 밑에서 악어가 보인다는 그 작품 또한 독특했다. 조만간 그 책도 읽어봐야겠다.
책 제목에서도 나와 있듯이 이 책의 주인공은 벼룩이다. 그것도 그냥 벼룩이 아니라 발레리나의 꿈을 가진 벼룩, 루시카이다. 루시카는 태어나자마자 자기는 얼마만큼이나 사느냐고 다짜고짜 엄마에게 묻는다. 엄마의 대답은 2주이다. 그런데 2주 밖에 없으니 시간이 얼마 없다가 아니라 2주일이면 사는 게 지긋지긋하도록 충분한 시간이라 한다. 예상밖의 대답이다. 벼룩의 입장에서 보면 뭐 그럴수도 있겠네..라고 생각하는 순간 루시카는 허비할 시간이 없다며 서두른다. 역시 같은 벼룩이라도 생각하는게 다르구나 싶다.
부모로부터 독립한 루시카는 떠돌이 개 카루소를 동반자로 삼아 발레리나의 꿈을키운다. 그러던 중 지츠지츠 모기와의 만남으로 발레리나가 되기위해 러시아로 떠나기로 결심한다. 만류하던 카루소는 결국 루시카에게 두손들고 도와주리라 약속한다. 그러나 갓 태어난 벼룩 루시카에게는 러시아로 가는게 쉽지 않다. 이때 카루소는 루시카에게 적절한 자원을 활용하라며 그 자원으로 기차와 기차를 타는 여행객을 알려준다. 어느 청년 여행객에 올라탄 루시카는 그 후 파리로 가는 여인, 장난감 배, 선원 등을 적절한 자원으로 이용해 러시아를 향해 가게된다. 그 와중에 맥주에 빠져 죽을 뻔 한 위기도 넘기게 되고 안락한 트럭운전사의 배꼽에서 현실에 안주하고 싶은 유혹도 느끼지만 결국 루시카는 한 러시아 서커스단의 벼룩 조련사 클로에 앞에서 멋진 춤을 보여주며 꿈을 이루게 된다.
얇은 책이라서 가뿐하게 읽을 요랑으로 시작한 책이지만 책을 놓은 지금 많은 교훈들이 내 머릿속에 차곡이 쌓이는 듯하다. 우리는 살아오면서 루시카의 삶이 2주동안인 것처럼 내 삶도 딱 어느 정도 까지라고 의식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마치도 계속해서 살 것처럼 남은 시간을 의식하지 못한 채 흘려보내기 쉽다. 이건 착각에 불과하다 우리의 삶도 그 때가 언제인지는 모르나 언젠가는 생을 마감하게 된다는건 당연한 사실이다. 따라서 비록 어렵지만 내게 주어진 시간이 유한하다는 것을 의식하게 된다면 매 순간마다 의미 없이 흘려보내지는 못할 것 같다. 시간의 중요성에 관한 글은 쌓이고 쌓였다. 그렇지만 루시카의 이야기는 내 나약해진 지금의 생활에서 번쩍 정신이 들게 해준다. 쬐끄만 벼룩이 말이다.
역자 후기를 보면 “일개 벼룩도 해냈는데, 그보다 훨씬 좋은 조건을 갖춘 우리가 못할게 무엇이랴!” 란다. 맞는 말이다. 일개 벼룩도 해냈는 것을 내가 못하면 뭐가 되는...
<기억에 남는 부분>
"하지만 희망은 벼룩만큼이나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른다.
그리고 가장 절망적일 때, 희망은 고개를 든다. 그리고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p.73
'사건에 동참하면서 역사에 가속 페달을 밟기로' 결심했다. ...p.82
일순간 루시카는 영원히 잠들고 싶은 욕구를 느꼈다.
미래는 두려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p.109
2006년 3월